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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한국 대 스웨덴, 9 대 0…너무 창피하고 부끄럽다

"스웨덴 국회의원 보좌진 1명도 없는데 한국은 9명이나 보유" "걷거나 자전거로 출근하는 스웨덴 국회의원" "사무실은 한국의 10분의 1도 안되는 3∼4평" "법안은 4년 재임중 1인당 70건…1년에 18건" "지방의원은 월급 없어…밤이나 주말에 회의" [※ 편집자 주= 최연혁 스웨덴 린네 대학교 교수 인터뷰는 분량이 많아 세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 기사가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인터뷰 기사도 조만간 송고할 예정입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최연혁 교수 [촬영 김수지·김민수]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한국 국회의원 특권은 180여가지라고 하는데, 스웨덴 국회의원들에게는 그런 것이 아예 없습니다. 국회의원은 봉사와 희생의 직업이기에 의원들 스스로 그런 걸 누리려 하지 ..

떡국 이야기

초하룻날, 떡국이 팔릴 것 같지 아니하여 화동 어떤 떡국집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서울에 집이 있는 사람이야 누가 오늘 같은 날 떡국을 못 먹겠습니까마는 오늘 떡국을 먹지 못하면 까닥없이 섭섭하다 하여, 부모를 떠나 시골서 올라온 학생들의 주문이 하도 많기에 이렇게 문을 열었습니다. 〈지방 학생 위해 떡국집은 개점〉 1926년 2월 14일자 동아일보 4면 예나 지금이나 설에 떡국을 먹지 못하면 섭섭했던 건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기사가 쓰인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음력설은 홀대하고 양력설을 강요했던 일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문에서 떡국 먹는 풍속 등 명절 분위기를 담을 만큼 음력 설은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당시 일제는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양력 설 한 번만 챙길 것을 주장..

세월엔 장사 없다

세상에 태어나 오랜세월 을 살아보니 건강을 자랑하던 친구 그 건강 다 어드메로 갔는지 돈 많다고 거들먹 거리던 친구 지금은 뭘 하는지 머리 좋아 공부 잘 한다던 친구 지금 어떻게 사는지? 좋은 직장에서 출세했다고 자랑하던 친구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아랑드롱을 닮았다던 친구 지금도 그렇게 멋쟁이일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모두 부질없더이다. 건강하던 친구도~ 돈 많던 친구도~ 출세했다던 친구도~ 머리 좋다던 친구도~ 멋쟁이 친구도~ 지금은 모두 얼굴엔 주름살로 가득하고 방금한 약속도 잊어버리고 얇아진 지갑을 보이며 지는 해를 한탄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더이다. 가는 세월 누가 막을거고, 오는 백발 어찌 막을건가? 청산은 날보고 티없이 살라하는데 어찌 티없이 살 수 있단 말이오. 청산은 날보고 말없이 ..

2024년 2월의 독립운동가,<김창환·이진산·윤덕보・김원식 선생> 선정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는 “일제강점기, 조국독립을 위한 무장투쟁 단체인 정의부 설립 100주년을 맞아 정의부에 소속되어 만주에서 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한 김창환(1963년 독립장), 이진산(2014년 독립장), 윤덕보(1995년 독립장), 김원식(1968년 독립장) 선생을 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19년부터 만주에서는 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이 일제에 무장투쟁으로 저항하였다. 이에 일제는 1920년 경신참변을 자행했고, 불안정했던 재만 한인사회는 독립운동 전선 복구를 위해 8개 단체가 모여 1924년 정의부를 설립하였다. 경기도 광주 출생인 김창환( 金昌煥 , 1872 ~ 1937 ) 선생은 대한제국 육군으로 복무하다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기자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대한..

독립운동 관련 2024.02.01

올림픽 사격 3관왕 권진호 선수 이야기

우리 엄마의 눈은 한쪽 뿐이다. 내가 6살 시절에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를 사랑했다. 나는 사격 올림픽 3관왕인 권진호이다. 내가 이런 큰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뺑소니 교통사고이었지만 결국 범인은 잡지 못하였다. 그후 어머니는 나를 낳고 열심히 일을 하셨다. 내가 집에서 티비를 볼 때 어머니는 나물을 팔러 시장으로 나가시곤 하셨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날 어머니가 내 입학식에 오셨지만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한쪽 눈 없는 애꾸장애인이 내 어머니라는 것이 너무 창피해 얼굴을 옷 속에 파묻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알아본 듯 나에게 오셔서"진호야!"하며 나의 이름을 크게 부르셨다. 입학하는 애들의 눈들이 어머니에게 시선이..

최고의 친구

친구의 잘못은 모래위에 적는 거래요. 밀물에 지워지라고! 친구의 고마움은 바위 위에 새기는 거래요. 비바람에 견디며 영원히 기억하라고! 친구의 눈물은 구름위에 올려 놓는 거래요. 힘들면 비 내릴 때 나도 같이 울어 준다고!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섭섭한 일도 생기고 고마운 일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마움은 빨리 잊고 서운한 감정은 오래 남겨 두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고마움은 오래 기억하고 섭섭함은 빨리 털어 버려서 서운함을 빨리 잊고 살지요. 친구여! 우리도 혹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면 오늘 이시간 이후로 훌훌 털어 버립시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