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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여자 유도 메달리스트 허미미 선수, 현조부 故 허석 의사 비 참배

일제에 죽음으로 항거한 허석 의사 5대손 태극마크 달고 올림픽 메달 획득 파리올림픽 여자 유도 57kg급 은메달, 혼성단체 동메달의 허미미 선수가 6일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에 위치한 현조부 허석(1857~1920) 의사 기적비에 메달을 올리고 승전보를 고했다.허 선수의 5대 조부인 허석 의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 격문을 붙여 지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했고 1919년 고종황제 사당 건축을 위해 노력하다가 옥고를 치른 후 출소해 3일 만에 옥고의 여독으로 순국했다.▲파리올림픽 여자 유도 57kg급 은메달, 혼성단체 동메달의 허미미 선수가 6일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에 위치한 현조부 허석(1857~1920) 의사 기적비에 메달을 올리고 승전보를 고했다.ⓒ프레시안(박종근)허 의사는 대한민국 정부..

독립운동 관련 2024.08.09

〔만 원의 행복​〕

햇살 따라 모여든사람들의 발길이 멈추는 곳이 있기 마련인데요.  해푸른 토요일인 오늘도 오가는 발길이 멈추지 않고 있는 이 동네 마트엔  가족들과 함께 할 먹거리들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는데요  앉은뱅이 햇살 한 줌을 붙잡고 하얀 얼굴을 한 할머니 한 분이포대기에 불끈 동여맨 아기를 업고 들어서자 마자   시끄러운 사람들 소리에 하늘 잠자던 아기가 놀랐는지 연신 울어대는 소리를 애써 달래며 분유 한 통을 카운터에 내밀고 계셨는데요 "그려 빨리 가서 맘마 줄게 좀만 기다려." 하얀 웃음으로 아기의 눈물을 애써 지우고 있는할머니에"할머니….. 25,000원 입니다"​ 카운터 여직원의 말에 황급히 손지갑을 꺼내든 할머니는 나올 것 없는 지갑을 뒤져가며 겨우 내놓은 건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

2024년 8월의 독립운동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여성 독립운동가들’ <곽낙원·임수명·이은숙・허은> 선정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는 독립운동의 터전을 마련하고 서신 전달과 자금 지원을 수행한 여성 독립운동가 곽낙원(1992년 애국장), 임수명(1990년 애국장), 이은숙(2018년 애족장), 허은(2018년 애족장) 선생을 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곽낙원은 김구의 어머니로, 임수명은 신팔균의 부인으로, 이은숙은 이회영의 부인으로, 허은은 허위의 재종손녀로 불리고 기억되어왔지만, 이들 역시 항일투쟁의 역사에 분명한 발자국을 남긴 독립운동가였다.  황해도 재령 출생(1859년)인 곽낙원은 17세에 아들 김구를 낳았는데, 김구의 항일투쟁 여정은 곽낙원에게 평범한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 옥바라지를 지속하였고, 며느리가 사망하면서 어린 두 손자까지 도맡아 키워야 하는 힘든 삶 속에서도 ..

독립운동 관련 2024.07.31

[별거 없더라]

[별거 없더라] 그 사람의 삶이행복해 보여들여다봤더니잦은 다툼이 있더라! 그 사람의 삶이화려해 보여들여다봤더니외로움을 감추고 있더라! 그 사람의 삶이부유해 보여들여다봤더니마음이 가난하더라! 그 사람의 삶이부러워서들여다봤더니아픔을 숨기고 있더라! 그 사람의 삶이성공적으로 보여들여다봤더니남모를 실패가 있더라! 남의 삶이좋아 보여도,남의 삶이행복해 보여도,나름대로 고통을 안고살더라! 그러니,내 사는 거남 사는 거비교하지 마시고,주어진 내 삶 잘 챙겨서살아갑시다. 기왕사는 거영원히 변하지 않을영원한 생명의 낙원! 이 아름다운 희망 하나씩품고 살면더욱더 좋겠지요.^^ -페이스북 좋은 글-

친구(親舊)란?

가진 정성을 다해 애지중지 키웠던자식들, 다 떠나니내 자식이 아니었다.  꼬깃꼬깃 숨겨 놓은옷장 속 돈, 쓰지 않으니내 돈이 아니었다.  긴 머리칼 빗어 넘기며미소 짓던, 멋졌던 그녀늙으니 예전 그 모습이 아니었다.  아내는 큰방, 나는 작은방몸은 남이 되고말만 섞는 아내조차진정한 내 짝은 아닌가 보다.  칠십 인생 살아보니내 것일랑은 없고빚만 짊어진 빚쟁이처럼서럽고 처량하기만 하다.  내 것이라곤 없음이니잃을 것도 숨길 것조차도 없다.  병 없이 탈 없이 살아도길어봐야 이제 몇 년…,  생각해 보니…,그나마 좋은 건 친구였다.  좋아서 손잡아 흔들어주고서로에게 좋은 말해주고,  한잔 건네고 웃고 말해가며기운 나게 해주고돌아서면 보고 싶고그리운 사람, 바로 친구였다.  고마운 친구야! 부디 아프지 말고건..

2024년 7월의 독립운동가, <황진남·이의경·김갑수> 선정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는 독일에서 유덕고려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를 결성하여 외교 독립운동을 이어간 황진남(2019년 애족장), 이의경(1990 애족장), 김갑수(1993년 건국포장) 지사를 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 그중 독일이라는 낯선 땅에서 한국의 처참한 현실을 알리고 독립운동에 매진한 젊은 지식인들이 있었다. 바로 유럽 최초의 한인유학생단체인 ‘유덕고려학우회’의 황진남․이의경․김갑수, 이들은 각종 선전물 제작·배포와 국제회의를 통해 일본의 침략행위와 한국의 상황을 세계에 알렸다.  함흥 출생(1897년)인 황진남 지사는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참사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대학에서 유학하였다.   1923년..

독립운동 관련 2024.07.09

2024년 6월의 독립운동가, <프레드릭 에이 맥켄지·플로이드 윌리엄 톰킨스·루이 마랭> 선정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는 “외국에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한국친우회* 활동을 전개한 프레드릭 에이 맥켄지(2014년 독립장), 플로이드 윌리엄 톰킨스(2015년 애국장), 루이 마랭(2015년 애국장)을 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 한국친우회 : 대한민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외국인들의 단체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 소식은 미국과 유럽에 알려졌다. 이에 정의롭고 양심 있는 외국인들은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한국친우회’를 결성, 일제의 폭력을 비판하고 한국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캐나다 출생(1869년)으로 영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프레드릭 에이 맥켄지는 한국을 방문한 후 일제에 맞서 싸우는 의병의 활약상을 취재하고 이를 세계에 알렸다.  대한제국..

독립운동 관련 2024.07.09

2024년 5월의 독립운동가<채찬·김창균·장창헌・이춘화 선생> 선정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는 사이토 총독 저격 사건 100주년을 맞아 압록강 상류에서 국경을 시찰하던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저격하는 등 지속적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채 찬(1962년 독립장), 김창균(1995년 독립장), 장창헌(1995년 애국장), 이춘화(1995년 애국장) 선생을 ‘2024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항일무장투쟁은 한말 의병항쟁에서 시작되었으며, 일제의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자 의병들은 일제의 추적을 피해 만주 각지와 연해주 등지로 피신하여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여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한다는 목표 아래 서북간도를 중심으로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직할부대(1924년 설립)인 참의부 독립군..

독립운동 관련 2024.07.09

2024년 4월의 독립운동가 <유기동·김만수·최병호 선생> 선정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는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 100주년을 맞아 일본 고등경찰 간부를 사살하는 등 만주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유기동(1963년 독립장), 김만수(1963년 독립장), 최병호(1963년 독립장) 선생을 ‘2024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일제의 강제병합으로 한국의 국권이 상실된 1910년 이후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만주로 망명하여 척박한 환경과 생활 여건의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해 나가고, 미래의 독립전사들을 길러냈다.   이러한 노력은 3・1운동 이후부터 큰 성과로 이어져 독립군의 청산리대첩과 같은 독립전쟁 승리나 단체・개인이 감행하는 의열투쟁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1924년 4월 유기동 선생 등 세 청년의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는 대표적인 의열투쟁의..

독립운동 관련 2024.07.09

백산 우재룡선생 어록비 제막식(2024.07.04)

독립운동가 백산(白山) 우재룡(禹在龍,이명: 禹利見) 선생의 어록비 제막식이 2024.07.04(목) 11:00 충남 천안시 동남구 독립기념관 시·어록비공원에서 열렸다. 제막식에는 백산 선생의 장남인 우대현 선생과 유족들이 참석했고 김능진 광복회 부회장, 한시준 독립기념관장, 최봉태 기념사업회 회장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어록비에는 우재룡 선생이 1921년 11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조선총독부로부터 받은 신문조서 내용이 적혀 있다.우재룡 선생이 신문에서 답한 "조선이 일본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한 바가 없다"면서 "다만 국권 회복을 도모하는 것은 조선인의 의무다"라고 한 어록이 기록됐다. 1906년 의병이 되기 위해 탈영, 영천의 정용기(鄭龍基)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