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538

2026년 11월의 독립운동가, <문석준‧성기석‧홍익범 선생> 선정

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는 일제 말 금지된 해외 단파방송을 청취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소식과 국제정세를 국내에 알린 문석준(2017년 애국장), 성기석(1990년 애족장), 홍익범(1990년 애족장) 선생을 ‘2026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40년 8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폐간 등 일제의 언론 통제가 강화되면서 국내에서는 전쟁 상황과 해외 독립운동 동향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일제는 패전 가능성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외국 단파방송 청취를 통제했으며,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에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소지한 단파수신기까지 압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어 방송과 미국에서 제작한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를 통해 해외 독립운동 소식과 전황..

독립운동 관련 2026.10.31

2026년 10월의 독립운동가, <이병기‧신명균 선생> 선정

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는 일제의 한글 탄압 속에서도 문법을 다듬고 보급에 힘쓰며, 우리말을 지켜낸 이병기(1990년 애국장), 신명균(2017년 애국장) 선생을 ‘2026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일제 시대의 한글 운동은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고 어문 규범을 확립하기 위한 문화적 독립운동이었다. 일제가 조선어 규범을 장악하려는 상황에서 조선어연구회(이후 조선어학회)는 한글 보급과 교육에 힘쓰는 한편,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1940)을 공표하여 우리말의 표준화와 사전 편찬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활동은 일본어 상용화 정책에 맞선 민족운동이자 독립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결국 일제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을..

독립운동 관련 2026.09.30

변해가는 형제들...

"제사도 명절도 다 부질없더라.." 60~70대 이후 형제자매가 남이 되는 이유? 한 뿌리에서 태어나 함께 시간을 보냈던 형제자매도 60~70대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기기도 한다. 큰 갈등이 없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마지막 통화가 언제였는지 떠올리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것은 정이 식어서라기보다, 서로를 이어주던 환경과 역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60~70대 이후 형제 관계에 변화가 생기는 다섯 가지 이유를 살펴본다. 형제 관계를 지탱하던 가장 큰 기둥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안부를 묻고 명절에 모일 명분이 있었지만, 그 기둥이 무너지는 순간 형제들은 각자의 자기 궤도로 흩어진다. 부모라는 공통의 화제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어색한 침묵뿐이다. 이제는 억지로 모일 이유를 찾지 ..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밉게 보면잡초 아닌 풀이 없고,곱게 보면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내가 잡초되기 싫으니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털려고 들면먼지 없는 이 없고,덮으려고 들면못 덮을 허물없으되,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그 눈 밖에 나기는 한 순간이더라.귀가 얇은 자는그 입 또한 가랑잎처럼 가볍고,귀가 두꺼운 자는그 입 또한 바위처럼 무거운 법생각이 깊은 자여!그대는 남의 말을 내 말처럼 하리라.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깊음은 사람을 감동케 하니,마음이 아름다운 자여!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현대 시인 : 이채 (李彩)

2026년 09월의 독립운동가 이한구, 손영각, 최산두

1905년 11월 일제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을사늑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전국 곳곳에서는 국권을 되찾기 위한 의병운동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경상북도 영천을 중심으로 산남의진(山南義陣)이 결성되었다.산남의진의 결성에는 고종의 측근이었던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정환직은 고종의 밀명을 받은 뒤 아들 정용기에게 영남에서 의병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정용기는 1905년 12월 영천으로 내려가 이한구(李韓久)·정진한(鄭鎭漢)·손영각(孫永珏) 등과 의병을 일으킬 것을 논의하였다. 이들은 경고문과 통문(通文)을 각지에 보내 의병을 모집하였다.이 소식이 알려지자 경상도 각지에서 활동하던 의병과 유생, 농민 등이 모여들었다. 1906년..

독립운동 관련 202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