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백산(白山) 우재룡(禹在龍,이명: 禹利見) 선생의 어록비 제막식이 2024.07.04(목) 11:00 충남 천안시 동남구 독립기념관 시·어록비공원에서 열렸다. 제막식에는 백산 선생의 장남인 우대현 선생과 유족들이 참석했고 김능진 광복회 부회장, 한시준 독립기념관장, 최봉태 기념사업회 회장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어록비에는 우재룡 선생이 1921년 11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조선총독부로부터 받은 신문조서 내용이 적혀 있다.
우재룡 선생이 신문에서 답한 "조선이 일본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한 바가 없다"면서 "다만 국권 회복을 도모하는 것은 조선인의 의무다"라고 한 어록이 기록됐다.
1906년 의병이 되기 위해 탈영, 영천의 정용기(鄭龍基)와 함께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일으킨 뒤 연습장(練習將)으로 활약하면서 영일의 입암전투(立巖戰鬪) 등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정용기가 죽은 뒤에는 그를 계승한 그의 아버지 정환직(鄭煥直) 진영의 선봉장으로서 영일·경주·청송·영천·대구 근방에서 용맹을 떨쳤다.
1908년 무기조달 관계로 대구에 숨어들었다가 잡혀 종신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는데, 대한제국이 멸망한 뒤 1911년에 이른바 은사령에 따라 출옥하였다.
1915년 독립운동단체 '대한광복회'를 조직, 군자금을 모집하고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다. 1922년에는 경성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6년간의 옥고를 치른 뒤 1937년 출옥 후 1955년 71세 나이로 작고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백산 우재룡 선생은 손기찬 의사와 산남의진 의병 활동도 같이 했지만 채기중 선생 등 영주 풍기 광복단 결성에 참여 활동하여 경상북도 관찰사 장승원 살해 사건의 공범으로 일제로 부터 처벌을 받았음.
참고 : 사단법인 산남의진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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