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손기찬(孫基瓚) 37

삼림령

국권을 피탈한 일제는 1911년 삼림령을 제정하여 삼림의 소유자가 농상공부 대신에 신고하지 않으면 국유로 간주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 결과 국유지였던 조선의 삼림이 개인 소유로 전환되었고 압록강과 두만강변 등 전체 산림의 50% 이상이 조선 총독부와 일제의 소유로 넘어가 대규모 산림이 벌채되었다. 일본인들에게 삼림 소유권이 넘어가고 조선의 백성들은 삼림을 이용하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경상북도 칠곡군 孫基瓚외 다수 개인소유의 산을 보안림으로 편입하여 개인이용을 금지시키는 내용의 조선총독부 1930.8.27일자 관보

상주 의사 유적비

상주 의사 유적비(尙州義士遺蹟碑) 요약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에 있는 항일의병 및 3·1운동 기념비.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의 용화(龍華) 지역에서 항일의병 및 3·1운동을 통하여 조국 광복에 힘쓴 5명의 의사(義士)를 기리기 위하여 1984년 10월 1일 지역 주민들이 건립한 기념비이다. 화북초등학교 용화분교 앞의 용화정공원에 조성된 기념비는 높이 2.5m, 부지 면적은 3.3㎥이다. 기념비는 기단 위에 오석(烏石)의 비신(碑身)과 비갓을 얹은 형태로, 비신의 앞면에는 '의사(義士) 의병장(義兵將) 전성희(全聖熙) 정양수(鄭良洙) 손기찬(孫基瓚) 김용준(金容俊) 홍우선(洪雨先) 유적비(遺蹟碑)'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다. 비신의 좌우 옆면과 뒷면에는 다섯 의사의 출신 및 행적을 간략히 새겨 놓았다..

孫基瓚 체포 및 동향파악 보고기록

1. 國權恢復ヲ標榜セル不穩團體員發見處分ノ件續報 1918.4.17. (국권회복을 표방하는 불온단체원 발견처분 건 연속 보고) 수신자 : 總督, 政務總監, 總務局長, 陸軍大臣, 駐箚軍司令官, 師團長, 內閣書記官長 內務,外務次官, 拓殖局長官, 警視總監, 各道警務部長(총독,정무총감,총무국장,육군대신,주차군사령관,사단장,내각서기장관,내무,외무차관,척식국장관,경시총감,각도경무부장) 발신자 : 川村竹治(內務省 警保局長) 가와무라타케지 (내무성 경보국장) 大正七年四月二十二日 接受 主管政務局 第一課 大正七年四月十七日 高第八四三一號 國權恢復ヲ標榜セル不穩團體員發見處分ノ件續報(一月二十八日高第一七四一號三月二日高第四○一八號 參照) 旣報光復會員ノ犯罪事件中慶尙北道漆谷郡北三面居住資産家張承遠ヲ殺害セシ犯人ヲ發見逮捕シ目下忠淸南道及慶尙北道警..

光復會事件관련 당시 언론 보도

1. 法廷의 大 殺人團(每日申報1919.2.16.일자) 公州地方法院에서 光復會事件 被告 40명에 대한 豫審을 지난 5日부터 開始, 오늘 그 中 8名은 免訴되고 32名은 公判에 回附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免訴된 者 洪顯周(37), 權準興(38), 金在貞(57), 奇載璉(48), 李庭禧(38), 崔浚(35), 金魯卿(35), 姜順弼 1作(37) 公判에 回附된 者 朴尙鎭(35), 蔡基中(46), 金漢鍾(35), 張斗煥(25), 庾昌淳(38), 林世圭(一名 林鳳柱 39), 權相錫(一名 權國弼 52), 金敬泰(一名 金永根 40), 金在昶(31), 孫基瓚(33), 趙鍾哲(27), 金在豊(34), 姜奭周(23), 成文永(32), 趙鏞弼(52), 李在德(30), 金商俊(32), 鄭泰復(31), 黃學性(35), 金東鎬(..

광복회사건 판결문 해석본 (1919.9.22.)

판 결 경상북도 慶州郡 外東面 麻明里 재적·거주 농업 朴尙鎭(박상진) 36세 同道 榮州郡 豊基面 東部洞 재적·거주 농업 일명 小夢(소몽), 蔡基中(채기중) 47세 충청남도 禮山郡 光時面 新興里 재적·거주 농업 金漢鍾(김한종) 36세 동도 天安郡 城歡面 三龍里 재적·거주 농업 張斗煥(장두환) 26세 동도 동군 修身面 卜會里 재적·거주 庾昌淳(유창순) 39세 경상북도 榮州郡 鳳峴面 魯佐洞 재적·거주 농업 통칭 鳳柱(봉주) 또는 東根(동근), 林世圭(임세규) 40세 동도 동군 長秀面 葛山里 재적 충청남도 天安郡 北面 林松里 거주 농업 통칭 相錫(상석) 또는 國弼(국필), 權成旭(권성욱) 53세 동도 靑陽郡 赤谷面 冠峴里 재적·거주 농업 통칭 永根(영근), 金敬泰(김경태) 41세 동도 禮山郡 光時面 新興里 재적..

광복회사건 예심종결결정서 해석본(1918.10.19.)

右 保安法違反 恐喝 殺人 放火 强盜 犯人藏匿 鋶砲火藥類取締令違反 橫領被告事件豫審을 遂하여 決定함이 左와 如하다 豫審終結決定書 慶尙北道 慶州郡 外東面 鹿洞里 四百六拾九番地 無職 朴尙鎭(박상진) 三十五歲 同道 榮州郡 豊基面 東部洞 農業 蔡基中(채기중) 四十六歲 忠淸南道 禮山郡 光時面 新興里 農業 金漢鍾(김한종) 三十五歲 同道 天安郡 城歡面 三龍里 農業 張斗煥(장두환) 二十五歲 同郡 修身面 卜多會里 農業 庾昌涥{유창형[庾昌淳(유창순)의 잘못, 편자 주]} 三十八歲 慶尙北道 榮州那 鳳峴面 魯佐洞 林鳳柱(임봉주) 林世圭(임세규) 三十九歲 同郡 長封面 葛山里 當時 忠淸南道 天安郡 北面 海松里權國弼(권국필) 權相錫(권상석) 五十二歲 忠淸南道 靑陽郡 赤谷面 冠峴里 農業 金永根(김영근) 金敬泰(김경태) 四十歲 同道 禮山..

산남의진 의병활동

1. 칠곡출신 의병 칠곡군의 경우, 조선 말기 의병전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결성된 의병부대는 없다. 제1차 의병전쟁기에 이웃 고을 김천에서 창의한 김산·선산·상주의 양반 유생들이 결성한 김산의진에 참여한 칠곡 출신의 의병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그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제2차 의병전쟁기에는 영천에서 결성된 산남의진에 참여한 장준호·장성우·손기찬(孫基瓚) 등이 칠곡 출신이다. 회산(回山) 장준호(張俊灝)[1888~1939]는 칠곡군 가산면 학상리 출신이다. 인동장씨 장희학 (張希鶴)의 장남으로 태어나 18세인 1906년 4월 영천에서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1906. 4~1908. 7]에 참여하였다. 1906년 7월에 창의장 정용기가 피체된 뒤 임용상부대(林龍相部隊)의 참모, 1907년 4월 대장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