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손기찬(孫基瓚)

상주 의사 유적비

용화(龍華) 2018. 4. 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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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의사 유적비(碑)    

요약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에 있는 항일의병 및 3·1운동 기념비.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의 용화() 지역에서 항일의병 및 3·1운동을 통하여 조국 광복에 힘쓴 5명의 의사()를 기리기 위하여 1984년 10월 1일 지역 주민들이 건립한 기념비이다. 화북초등학교 용화분교 앞의 용화정공원에 조성된 기념비는 높이 2.5m, 부지 면적은 3.3㎥이다. 기념비는 기단 위에 오석()의 비신()과 비갓을 얹은 형태로, 비신의 앞면에는 '의사() 의병장() 전성희() 정양수() 손기찬() 김용준() 홍우선() 유적비()'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다. 비신의 좌우 옆면과 뒷면에는 다섯 의사의 출신 및 행적을 간략히 새겨 놓았다. 2005년 5월에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전성희와 정양수는 용화 지역 출신으로 1919년 4월 8일 함께 독립통고문을 만들어 마을 주민들에게 만세 시위 계획을 알리고 4월 9일 정오 무렵, 운흥리에서 농민 100여 명을 규합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선도하였다. 두 사람은 일제 경찰에 주동자로 체포되어 전성희는 징역 1년 6월, 정양수는 징역 1년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전성희는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복역중 병을 얻은 후유증으로 1929년에 순절하였고, 정양수는 출옥 후 전국을 돌며 항일운동을 하다가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후에 두 사람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손기찬은 경상북도 칠곡 출신으로 광복단()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으며, 1917년 채기중() 등이 군자금 모집을 거부한 친일 부호 장승원()을 처단하는 거사를 도왔다. 이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태형 90대의 형벌을 당하였으며, 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용준은 전라북도 군산 출신으로 국권피탈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켜 대포 5문을 몰고 황해도까지 가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다가 패퇴하였다. 이후 용화 지역에 은신하며 의병장 한봉수()와 합세하여 아장()으로서 종신 투쟁하였다. 홍우선은 충청북도 보은 출신으로 용화 지역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일본 관헌을 격멸하였으며, 한봉수와 합세하여 아장으로 활약하다가 1936년에 사망하였다. 1973년 고향인 보은군 내북면 도원리에 '의병아장 홍공우선 공적비()가 건립되었다.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상주 의사 유적비 [尙州義士遺蹟碑] (두산백과)

 

 

유적비(前)

 

유적비(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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