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동 조선인대학살 100년과 ‘박열사건’의 진상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도쿄를 비롯한 간토(관동) 일대에 일어난 대지진의 혼란과 공포 와중에 학살사건이 일어났다. 무려 6천6백여 명, 많게는 2만3천여 명까지 정확한 피해자 수를 알 수 없는 학살의 근거는 “조선인이 방화했다”, “누군가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는 유언비어이다. 일본 내무성은 ‘전시’ 또는 ‘내란’에 해당하는 비상시국에서 발동하는 계엄령을 발령해 군대를 무장시켜 시내로 출동, 조선인과 중국인에 대한 사냥에 나섰다. 군부와 경찰은 자경단과 긴밀히 협력해 ‘불령선인’을 연행, 경찰서로 가두었다가 자경단에게 넘겨 학살을 자행하도록 했다. 요주의 인물에 대한 계엄군의 무작위 검속으로 검거된 이도 6,380여 명에 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