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유익한 글 92

올챙이 시절 잊지 말자!

독일은 우리나라에서 광부가 가기 전에 유고슬라비아, 터키, 아프리카 등지에서 많은 광부들을 데리고 왔었다. 이들은 아주 나태하여 결국 광산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광부들이 투입되면서 생산량이 엄청나게 높아지자 독일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였고, 이렇게 근면한 민족을 처음 봤다면서 한 달 급여 120달러에 보너스를 줘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한편 왜, 간호사가 필요하였느냐? 국민소득이 올라가니 3D 업종이나 힘든 일은 기피하는 현상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특히 야간에는 일할 간호사가 없었다. 특근수당을 많이 준다 하여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한국 간호사들에 대하여서는 아주 후진국에서 왔는데 일을 맡길 수 없다 하여 일부는 죽은 사람 시체를 알코올로 닦고, 수의를 입히는 일..

★술 주(酒)와 진한 술 주(酎) ★

술 주(酒)자는 물 수(水)변에 닭 유(酉)자로 되어 있다. 이 말을 풀어서 보면‘닭이 물을 먹듯이, 술을 먹으라’ 는 뜻이다. 그렇다면 닭이, 물을 어떻게 먹는가?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한번 쳐다보고,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먹는다. 사람도 그렇게 천천히..조금씩 먹어야, 술이크게 취하지않고 건강을 해치지않으며 입에서헛소리 도 안 나온다. 또한 닭 유(酉)자는, 하루중에 유시(酉時) 를 가리킨다. 유시는 닭이 잠자리에 들어가는 시간이다. 닭은 보통 겨울에는 5시경, 여름에는 7시경에 잠 자리에 들어간다. 그러니 술을 먹되, 닭이 물을먹듯 조금씩먹고 집에는 빨리빨리 일찍 들어가라는 뜻이다. 닭이 밤 늦도록 물 먹는다는 말을 들어 봤는가? 낮에도 물 먹는거 보면, 두번 ~ 세번밖..

이성계(李成桂)와 이지란(李之蘭)의 점복(占卜) 이야기

「퉁두란 이야기」는 이성계(李成桂)[1335~1408]와 퉁두란[1331~1402]에 대한 점복(占卜)과 의형제 결연, 청해 이씨 유래 등으로 이루어진 인물담이다. 이를 「이지란 이야기」라고도 한다. 퉁두란의 성은 퉁[佟], 이름은 두란[쿠룬투란티무르; 古倫豆蘭帖木兒]인데, 나중에는 이름을 이지란(李之蘭)으로 바꿨다. 퉁두란[이지란]은 아버지의 직위를 물려받아 천호가 된 후 1371년(공양왕 20) 고려에 귀화하여 이씨 성과 청해(靑海)[북청]라는 본관을 하사받았다. 퉁두란은 태조 이성계와 결의형제를 맺었고, 이성계의 편장으로 왜구를 무찔렀으며, 1388년 위화도 회군에 참가하였다. 그 후에 조선의 개국 공신이 되었고, 1, 2차 왕자의 난에도 공을 세웠다. 태조가 영흥으로 은퇴하자 그도 풍양으로 은거하..

*서산대사의 해탈시 *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군고. 출세 하기 싫은 사람 누군고.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군고. 흉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겠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 배웠다 주눅 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소리 치지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 마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더이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하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다 바람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바람이고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

□어느 남편의 감동적인 이야기□

저는 결혼 8년 차에 접어드는 남자이며, 3년 전쯤에 이혼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었습니다. 그 심적 고통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말로 표현하지 못하며 저의 경우 딱히 원인은 없었고 주로 아내의 입에서 이혼하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더군요. 저도 회사생활과 여러 가지 집안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매우 지쳐있었던 때라 맞받아쳤구요. 순식간에 각방을 쓰고 말도 하지 않기 시작했으며 결국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불신은 날이 갈수록 커갔구요.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밉게만 보이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암묵적으로 이혼의 타이밍만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도 눈치가 있는지 언제부턴가 시무룩해지고 짜증도 잘 내고 잘 울고 그러더군요. 그런 아이를 보면 아내는 더 화를 불같이 내더군요.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계속 싸움의..

추억

우리는 1950년대 1960년대에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기다랗고 커다란 안테나가 달린 흑백티비에 리모컨이 없는 로터리식 이어서 손으로 직접 채널을 돌렸던 걸 기억합니다. 티비 화면이 잘 안나오면 한사람이 옥상에 올라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실외안테나를 좌우로 돌려 안테나 방향을 맞추곤 하였고, 티비에는 문도 달렸고, 열쇠가 있는 티비도 있었고, 다리도 네개 있었습니다. (대한전선, 이코노TV) 친구들과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김일, 홍수환, 김기수 등의 경기와 여로, 팔도강산, 아씨 같은 드라마와 보난자, 초원의 집, 전투, 육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형사 콜롬보, 등의 외국 드라마를 보았던 걸 기억합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부엌에 나가 아궁이에 나무를 때거나 일산화탄소를 마시며 연탄을 갈..

고결함을 다시 돌아봄

* 한판암 경남대 명예교수님의 글을 읽고 대선이 끝난 요즘 많은 분들이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 옮겨 왔습니다. 혹세에 온갖 유혹과 협박이나 이(利) 앞에서 독야청청 할 수 있을까. 견뎌내며 버티기 어려운 세파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세월에 돌부처처럼 꿈쩍하지 않을 재간이 없어 뜻을 굽히거나 훼절은 보편적인 현상일까. 불행하게도 질곡의 세월인 통한의 일제강점기, 민족상잔의 6·25, 암울했던 군사독재의 시대를 살아왔다. 그 시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부역(附逆)을 했다. 지금 그들은 반드시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어 단죄하면서 지워나감으로써 역사 바로잡기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상당한 인사들이 우리 역사에서 지워지고 있다. 특히 문인들 중에 그 부류에 포함되는 이..

한 턱의 의미

(서울 남부지법 민사조정 판례) A가 B에게 한 턱을 쏘겠다고 하고, 술집을 가서 먹고 나오는데... 계산할때 90만원 정도가 나와 A가 넘 부담되니 나눠내자 하였으나, B는 네가 한턱 내겠다고 했으니 난 못 내겠다 해서, 다투다가 A가 경찰에 고소함. 법원에서 소액심판을 받았다나 본데, 판결이 한 턱이라함은 맨 첨 주문한 것이 한턱! 추가된 것은 나눠 내야 마땅하다함으로 판결남. 그래서 최초 주문한 것 20만원은, A가 부담하고 나머지 70만원은 각각 35만원씩 부담시켰다 하네요. 따라서 앞으로 한턱을 살 때는 소주 한 병, 밥 한 그릇을 먼저 주문하고 계속 추가 주문하도록 하고, 한턱을 얻어먹을 때는 첨 주문할때 소주 박스, 맥주 박스, 고급 회코스를 한꺼번에 주문해야... ※한 턱 낼 때와 한 턱을..

감사하는 생활

유종해(연세대 명예교수)님의 Blog(22.1.9)에서 모셔왔습니다. 올해로서 내 나이 92세가 되어 제법 장수의 사람이 된 것 같이 생각되었으나, 우리 학교의 선배교수 김형석교수가 102살인데 얼마 전 “백년을 살아보니”란 책을 써서 받아 읽어 보니 두 가지를 강조하였다. 첫째는 감사하며 살 것, 둘째는 모범이 되는 생을 살아야한다고 강조하여 기독교를 믿는 선배교수에게서 좋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장수를 자랑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지난 12월 11일 대학동기와 점심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집에 다 와서 급하게 달려오는 자동차를 피하다 우리 집 옆의 길에서 넘어져 부상을 당했다. 마침 길을 지나가던 청년의 도움으로 일어나서 사력을 다해 집에까지 왔다. 그날이 토요일 오후라 병..

관상

사람은 누구나 좋은 얼굴을 가지기를 원한다 관상을 잘 믿지 않는 사람도 누가 "당신 관상이 좋다"고 하면 금세 입이 헤벌레 벌어진다 백범 김구 선생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청년 김구는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시험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당시엔 인맥과 재물이 없으면 출세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밥벌이라도 하려면 관상이라도 배워보라고 권했다. 김구는 ‘마의상서’라는 관상책을 구해 독학했다. 어느 정도 실력을 연마한 그는 거울을 갖다 놓고 자신의 관상을 보았다. 가난과 살인, 풍파, 불안, 비명횡사할 액운이 다 끼어 있었다. 최악의 관상이었다. "내 관상이 이 모양인데 누구의 관상을 본단 말인가!" 때마침 장탄식하던 김구의 눈에 책의 마지막 구절이 들어왔다. '얼굴 잘생긴 관상(觀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