兄님과 함께 아침 일찍 출발해서 10시 밀양종친회 행사에 참석 후 서둘러 마치는데로 조부님의 山南義陣 義兵活動 유적을 찾아 볼 예정이었다. 오전에 종친회가 끝나 점심식사를 하고 密陽에서 浦項市 竹長面 立岩里(1907년 당시 永川郡)를 향해 浦項 방향으로 달렸다. 서포항 톨게이트에서 나와 立岩里를 찾아가는 지방도로는 공사 중인 구간도 있어 조금 찾기 어려웠고 처음 가는 길이라 아주 멀게 느껴졌다. 얼마의 시간이 걸려 죽장면 소재지 立岩里에 도착하여 竹長高等學校를 물으니 현재 慶北看護高等學校로 교명 변경이 되어있었다. 주변 몇 몇 사람들에게 義兵活動史에 있어 그 유명한 입암리 전투 관련 遺跡地를 물으니 아무도 모른다. 휴일이지만 면사무소를 방문하여 물어도 당직근무자도 몰라 전화로 누구에겐가 물어본 후 간호고등학교 뒤편 어디쯤 일거라고 일러준다. 경북간호고등학교로 돌아와 울타리 전체를 돌아 군데군데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더 돌아보고 나와 주민에게 몇 번을 물어 학교 담장 뒤편으로 찾아간 곳에 山南義陣 發祥紀念碑가 외로이 모셔져 있었다. 우선 100년 전 조부님을 비롯한 여러 義士 분들이 나라를 위해 抗日투쟁을 하신 흔적인 산남의진 발상기념비란 碑文이 조금 먼데서 확인되는 순간부터 생전의 조부님을 뵙기라도 한듯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와락 달려가게 되었고, 나라를 위해 험준하고 먼 이곳까지 흔적을 남기신 조부님 생각에 울컥하는 마음으로 우선 참배부터 하였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酒脯 마련을 위해 다시 죽장면소재지 나와 가게로 들어가 막걸리와 오징어포를 장만하여 다시 가서 잔을 올려드리고 나오는 길에 연세 드신 주민이 지나가시기에 兄님이 매년 의사 분들을 위해 술이라도 한 잔 올려드리는지 물어 보자 그런 행사는 없다고 말씀하시기에 매우 씁쓸하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관할 문화원이나 보훈청에 정말 그런지 문의라도 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후손마저도 이렇게 찾아 나서기 어려운 일을 가지고 나라 탓만 하는 자책감도 들어 기회가 되는 데로 알아봐야겠는 생각을 했다. 종친회를 겸해 떠났던 일정에 조부님의 遺跡을 찾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은 초행길로 꾸불꾸불하고 먼 길이었지만, 나라를 위해 젊은 목숨을 草芥와 같이 버리며 崇高한 업적을 남기신 英靈들을 생각하면서, 서글픈 마음과 함께 救國의 일념으로 나라를 위해 獻身하신 조부님을 비롯한 여러 義士 분들께 늦게나마 참배를 드렸다는 것을 위안삼아 늦은 귀가였지만 한결 가벼워진 마음이었다.
2017.7.29. 손한승 씀
포항시 죽장면 입암리 (前)
포항시 죽장면 입암리 (後)
(윗줄 왼쪽에서 3번째 孫基燦은 瓚의 誤字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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