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의진(山南義陣)의 제3대 의병장 최세윤최세윤(崔世允, 1867-1916)은 경북 흥해군(興海郡) 서면(西面) 곡성리(谷城里) 학림동(鶴林洞)에 살았다. 그의 본관은 곡강(曲江), 이명은 최세한(崔世翰), 호는 농고(農皐), 자가 성집(聖執/成執)이다. 일본측 자료에는 주로 최성집으로 기록되어 있다. 1908년 3월 경주경찰분서에서 내부 경무국에 보고한 내용에 의하면, 최세윤의 친족은 흥해군의 소작농으로 대부분 가난하게 생활하였다. 최세윤은 흥해군의 형리(刑吏)와 병방(兵房) 서기로 활동하다가 1896년에 의병에 참여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소모장(召募將)으로 활동했다고 하나, 의진(義陣)의 소모장으로 활동한 사실이 잘못 전해진 것 같다. 일본 군경은, 그가 의병에 가담하기 전에 농사를 지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