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 5

*단 상(斷 想)*

일상의 생활이 힘들고 고통 스럽웠던 무더위도 한풀  꺽이고, 이제 천고마비의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보니...  • 건강하던 친구도,  • 돈 많던 친구도,  • 출세했다던 친구도,  • 머리 좋다던 친구도,  • 멋쟁이 친구도,,, 지금은 모두 얼굴엔 주름살로  가득하고 방금한 약속도  잊어버리고, 얇아진 지갑을  보이며, 지는 해를 한탄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 가더이다. 그저 구름가는 대로 바람부는대로 살다보니 예까지 왔는데 이제 ~  모든 것이 평준화된 나이.  ▪︎지난 날을   • 묻지도 말고,  • 말하지도 말고,   • 알려고 하지도 말고,  • 따지지도 말고,,,,                                정말 인생(人生)  70살까지 살면 7..

여민동락(與民同樂)

퇴계가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제자 들을 양성한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자, 일찌기 영의정의 벼슬을 지낸 바 있는 쌍취헌 권철이 퇴계를 만나고자 도산서당을 찾아 갔다. 권철은 그 자신이 영의정의 벼슬까지 지낸 사람인데다가, 그는 후일 임진왜란때 행주산성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한 만고 권률장군의 아버님이기도 하다. 권률장군은 선조 때의 명재상이었던 이항복의 장인 이기도 했다. 서울서 예안까지는 5백50리의 머나먼 길이다. 영의정까지 지낸 사람이 머나먼 길에 일개 사숙의 훈장을 몸소 찾아 온다는 것은, 그 당시의 관습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권철은 퇴계를 친히 방문하기로 했던것. 도산서당에 도착 하자 퇴계는 동구 밖까지 예의를 갖추어 영접하였다. 그리하여 두 學者는 기쁜 마음으로 학..

[한국은 보석같은 나라였다]

한국인은 원래 선한 품성을 가진 백의민족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작은 벌레의 생명조차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뜨거운 개숫물을 마당에 버릴 때에는 이렇게 외쳤다. “워이 워이!”  물이 뜨거워 벌레들이 다칠 수 있으니 어서 피하라고 소리친 것이다. 봄에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오합혜(五合鞋)와 십합혜(十合鞋), 두 종류의 짚신을 봇짐에 넣고 다녔다. '십합혜'는 씨줄 열 개로 촘촘하게 짠 짚신이고 '오합혜'는 다섯 개의 씨줄로 엉성하게 짠 짚신을 가리킨다. 행인들은 마을길을 걸을 땐 '십합혜'를 신고 걷다가 산길이 나오면 '오합혜'로 바꾸어 신곤 했다. 벌레가 알을 까고 나오는 봄철에 벌레들이 깔려 죽지 않도록 듬성듬성 엮은 짚신을 신은 것이다. '오합혜'는 '십합혜'보다 신발의 수명이 짧았으나 그 만큼 ..

9월 독립운동가 안춘생 / 조순옥 / 박영준 / 신순호

광복군 창설에 앞장선 중견 지도자와 여성 독립운동가, 안춘생-조순옥안춘생은 1912년 8월 12일 황해도 해주에서 안장근(안중근의사의 사촌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황해도 일대의 명문가였던 그의 집안은 1909년 안중근의거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으며, 1911년 소위 105인 사건의 주동자로 안명근이 지목되며 고초를 겪었다. 결국 그의 일가는 황해도 벽성군 금산면, 만주 지린성(吉林省) 무링현(穆陵縣),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등에 흩어져 이산(離散)되었다. 1920년대 안춘생 일가는 무링 인근의 함경도촌을 거쳐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퉁허현(通河縣)·이란현(依蘭縣) 등지로 이동하였다. 이때 안춘생은 퉁허에 있는 양진학교(養進學校)에서 소학교와 중학 과정을 마쳤다. 독립운동과 관련 깊은 교사가 많았던 양진학교..

독립운동 관련 2024.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