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와 국사가 살아 있으면, 나라도 망하지 않는다!’ - 2019년 11월의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 - |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박은식(1859.9.30~ 1925.11.1) 선생‘을 ’2019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선생은 1859년 9월 30일 황해도 황주군 남면에서 태어나, 1898년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에서 문교 분야의 간부로 활동하였으며, 독립협회가 강제해산당한 후에 경학원의 강사, 한성사범학교의 교사 및 서북협성학교와 오성학교 교장을 맡아 교육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 또한,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활동하면서 많은 논설을 쓰면서 국권회복과 애국계몽운동을 벌여 나갔다.
○ 선생은 일제의 무단탄압으로 1911년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국혼을 발흥시킬 역사서의 저술에 진력하였다. 1912년에는 상해에서 독립운동단체인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여 중국의 국민혁명 세력과 연대를 모색하였고,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등 한국 독립운동의 기반 조성에 주력하였다.
○ 1915년에 『한국통사(韓國痛史)』를 간행하였는데, 이를 통해 대외적으로는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잔학성과 간교성을 폭로규탄하고, 대내적으로 민족적 통분과 적개심을 유발하면서 동포들의 각성과 반성을 촉구하였다.
○ 또한, 북경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인 신한혁명당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 노령의 블라디보스톡에서 1919년 3․1운동을 맞이한 선생은 육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을 조직하여 국내외 거족적인 독립운동에 호응하여,
○ 그해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노령의 대한국민의회정부, 그리고 서울의 한성임시정부의 통일을 추진하여 통합 임시정부가 발족하는데 기여하였다.
○ 특히, 1920년에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를 간행하였는데, 이는 1884년 갑신정변부터 1920년 독립군의 항일무장 투쟁까지의 일제침략에 대한 한국민족의 독립투쟁사를 3․1운동을 중심으로 기술하여 민족적 자부심과 독립투쟁정신을 크게 고취하였다.
○ 1925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그 해 8월 만주 독립군 단체인 정의부의 지도자 이상룡을 국무령으로 추천하고 스스로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 1925년 11월 1일, 동포들에게 독립 쟁취를 위해 반드시 단결하라는 말을 남기고 66세를 일기로 상해에서 서거하였으며, 1993년 8월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운동 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년 12월 독립운동가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의사 (0) | 2019.12.07 |
---|---|
제80회 순국선열의 날 독립유공자 포상 (0) | 2019.11.17 |
2019년 10월의 독립운동가 안중근(安重根) 의사 (0) | 2019.10.04 |
2019년 9월의 독립운동가 지청천(池靑天) 장군 선정 (0) | 2019.09.01 |
일제 강점기 친일 밀정(密偵 ) 895명 명단 (0) | 2019.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