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판암 경남대 명예교수님의 글을 읽고 대선이 끝난 요즘 많은 분들이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 옮겨 왔습니다.
혹세에 온갖 유혹과 협박이나 이(利) 앞에서 독야청청 할 수 있을까. 견뎌내며 버티기 어려운 세파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세월에 돌부처처럼 꿈쩍하지 않을 재간이 없어 뜻을 굽히거나 훼절은 보편적인 현상일까. 불행하게도 질곡의 세월인 통한의 일제강점기, 민족상잔의 6·25, 암울했던 군사독재의 시대를 살아왔다. 그 시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부역(附逆)을 했다. 지금 그들은 반드시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어 단죄하면서 지워나감으로써 역사 바로잡기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상당한 인사들이 우리 역사에서 지워지고 있다. 특히 문인들 중에 그 부류에 포함되는 이들이 많음은 어디에 연유할까.
난세를 만나면 모두가 자기를 지켜내지 못해 천추(千秋)의 한을 남기는 것은 아닌가 보다. 우리가 천출이라고 얕보던 일개 기생이었던 ‘춘향’이가 무지막지하게 수청(守廳)을 강요하는 ‘변사또’에게 목숨을 걸고 정조를 지켜내려 하던 역사적 사실은 많은 걸 암묵적으로 웅변하는 대목이다. 하찮다고 생각해 오던 기생이지만 썩어빠진 양반 나부랭이나 기회만 엿보던 허약한 책상물림들에게 적지 않은 화두를 던져주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극한의 어려움이나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앞세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되는 조선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와 같은 탈출 방법으로 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역사의 죄인인 부역자들이 대표적으로 그런 부류가 아닐까 싶다. 이런 가치관이나 사상에 비해 권력의 정점에 선 이에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로 시작되는 단심가(丹心歌)로 화답하는 오상고절의 충신인 정몽주의 기개와 정신은 감히 따를 수 없는 결정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례이리라.
얼마 전 우리나라엔 대선(大選)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모리배를 방불케 하는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정치꾼들이 불나비처럼 모여들어 이전투구 하는 꼴이 가관이었다. 검고 흰 것도 구분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도 눈 감은 채 선거 후 자기 자리 확보라는 잇속에 매몰되어 으르렁 왈왈대는 무대에서 흑묘백묘(黑猫白猫) 구분이 부질없어 보였다. 예부터 “얼어 죽어도 양반은 곁불을 쬐지 않는다”고 했거늘 언제쯤이면 진정한 선거 축제를 지켜볼 수 있을까.
매화를 꽃의 우두머리라 해서 화괴(花魁)라고 한다. 그런데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을 팔지 않는다”는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의 참된 의미의 되새김이 절실한 오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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