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손기찬(孫基瓚)

"山南義陳歷史" 번역본 발간

용화(龍華) 2021. 12. 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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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산남의진기념사업회( 회장:慧信스님,거동사 주지)에서는 대다수 한자로 쓰여진 "山南義陳歷史" 책을 읽기 쉽게 번역 발간하여 산남의진 순국열사 유족에게 배포하였다.

 

                                                                                   역주자 정재진(丁再鎭)  

산남의진역사 국역후기

우리의 역사에서 「산남의진(山南義陣)」이라 명명한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을 기록한 문헌(文獻) 가운데 「산남의진역사」가 있다. 주지하시다시피 후대(後代)의 사람들이 전대(前代)의 역사적 사실을 알기 위하여 가장 보편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헌(文獻)이다. 그리고 문헌은 문자와 사람으로서, 문자(文字)는 당시의 사실을 사람의 손에 의하여 종이나 금석(金石)류 등에 문자로 기록된 것을 의미하고, 헌(獻)이란 당시의 사실을 보거나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의 근대사에 있어 가장 혹독한 시련과 격변의 시기였던 20세기 초엽의 사건들. 즉 을사늑약(乙巳勒約)과 군대해산(軍隊解散) 그리고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는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고, 이에 따라 잃어버린 국권(國權)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생(自生)된 의병(義兵)이라 불리우는 단체의 하나로서 영천지역〔영천시 자양면〕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산남의진의 무장항쟁은 100여년이 넘는 시간의 흐름으로 문(文)은 있으되 헌(獻)은 사라진지 오래인데, 차제에 문의 하나인 산남의진역사가 만들어지고 전해짐은 다행이다.

그러나 설혹 문이 존재한다 하여 이를 통하여 역사적 사실을 살피고 이해하며 나아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 이를 통한 역사적인 해석과 가치를 창출함에는 기술적인 문제가 뒤따른다. 즉 문자는 시대가 변천하고 사람들의 삶의 양태가 변화함에 따라 문자 또한 변화하고 진화한다. 산남의진 역사는 문자는 문자이되 지난 시대의 문자로 쓰이어졌기에 오늘날의 문자로 바뀌어야 하며, 이에 대한 해석 또한 현대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즉 지난 시대를 현재로 바꾸고 이미 죽은 글을 살아 있는 글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산남의진을 기념하는 단체인 (사)산남의진기념사업회에서는 그간 산남의진의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고 의사(義士)들의 위대한 업적을 천양(闡揚)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활발히 펼쳐오던 중, 올해의 사업으로 산남의진의 주요 문헌 중 하나인 산남의진역사의 번역과 역주작업을 채택하였으니, 산남의진역사(山南義陣歷史)는 달리 산남의진창의지(山南義陣倡義誌)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말하는 산남(山南)에 대하여 설들이 구구하지만 나의 견해로는 경상도와 충청도를 가름하는 문경의 새재(鳥嶺)를 기점으로 이남(以南)지방을 가리키니 달리 영남(嶺南)으로 부르며, 의진(義陣)이란 의병들로 구성된 군진(軍陣)이 된다.

「산남의진역사」에는 이 책이 언제 만들어진 지에 대한 정보는 보이지 않으며, 1970년 9월 30일에 발행된 「산남의진유사(山南義陣遺史)」라는 책자에 의하면 1946년에 편집을 착수했다는 기록은 보이지만 완성된 시점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시기를 유추 할 수 있는 근거로 당시 산남의진에 참여하였던 이순구(李純久) 의사께서 후지(後識)를 쓰셨고 입암에서 열린 위령제의 기록이 실린 것으로 보아, 1946년 2월 이후로부터 이순구의사께서 생존하신 1983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아시다시피 목판본으로 전통적인 방식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 책자는 국한문 혼용체가 아닌 순수 한문에 우리말의 토씨를 달아 만든 것이니, 한문적(漢文的)인 식견이 부족하고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내용 중에는 역사적인 사실과 중국의 고사(故事) 등을 많이 사용함으로서 문헌으로서의 활용성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저본(底本)을 삼은 것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장서를 파일로 다운받아 사용한 것이며, 책자는 목판본으로 100질(帙)이 만들어져 상하 두 권을 한 권의 책자로 묶었는데, 편집은 권두사(卷頭辭)를 필두로 진중 역사개요는 모두 39개 항목으로 쓰이어졌고 열전은 모두 203명의 의사들이 참여하였으며 착념지(着念地)로는 매현과 입암 그리고 상옥의 고천 영천 자양의 충효리이고 마지막으로 필자의 추고란에는 이순구씨의 후지와 이병락 이종기 두 분의 발문으로 구성되었다.

이에 기념사업회에서는 「산남의진역사」를 현대적인 책자로 만들기 위해 번역과 역주는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장인 본인에게, 윤문은 직전 기념사업회 회장을 역임하신 김정식 박사에게, 교정은 사단법인 임진왜란 영천성수복기념사업회의 이규화 박사에게 맡기고, 해제논문은 조충래 부회장에게 감수는 이○○ 교수에게 맡겼다.

한문에 토씨를 붙여 만들어진 책자를 풀어 현대인들을 위한 책을 만드는 것이 대단하거나 또는 최선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천 리 길을 가자면 한 걸음부터 시작하고, 아홉 길의 산을 쌓음에 한 삼태기의 흙으로 시작하는 것과 같이, 이 작업은 우리들이 산남의진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그 실체에 접근하고 나아가 다시는 실패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자료로 삼으며, 아울러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에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조국을 구하고자 사납기 그지없는 일제(日帝)의 잔혹한 폭력 앞에서 맨몸으로 대항하여 살신성인(殺身成仁)과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전범(典範)을 행하신 위대한 영혼을 기리고 유덕(遺德)을 천양 함에 있어 하나의 실천과 시작은 될 것이라 감히 말씀드리면서 역사에 관심을 가진 강호 제현의 질정(質正)을 간망(懇望)하는 바이다.

다시금 본 책자를 만듦에 현로(賢勞)하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덧붙여 이 사업을 위해 물심양면의 노력을 기울여주신 혜신스님과 예산을 지원해 주신 최기문 영천시장님과 ○○○국가보훈처 경주지청장께 심심한 치사를 드린다.

2021년 추분절에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정재진(丁再鎭)이 삼가 기록하다.

 

                                                                                                                           2021. 10. 18.